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자 조용기 원로목사 소천

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자인 조용기(85) 원로목사가 14일 별세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조 목사가 이날 오전 7시 13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빈소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마련되며 조문은 15일 오전 7시부터 받을 예정이다. 장례예배는 18일 오전 8시 한국교회장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진행되며 장례위원장은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회장 소강석, 이철, 장종현 목사가 맡고 설교는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가 맡는다. 하관예배는 18일 오전 10시 장지인 파주시 오산리 최자실국제금식기도원 묘원에서 열린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자인 조용기(85) 원로목사가 14일 별세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자인 조용기(85) 원로목사가 14일 별세했다.

조 목사는 지난해 7월 뇌출혈 증세를 보여 수술을 받은 후 지금까지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 왔다.
유족은 조희준, 민제(국민일보 회장), 승제(한세대 이사) 등 3남이 있다. 조 목사의 아내 김성혜 한세대 총장은 지난 2월 79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조 목사는 1936년 경남 울주군에서 5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수선한 해방정국이 이어지던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한 부친이 낙선한 뒤로는 가난한 사춘기를 보냈고 곧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부산공고에 입학했으며, 학교에 주둔해 있던 미군부대에서 학교장과 부대장 사이의 통역을 맡으면서 영어 실력을 키우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폐결핵으로 사망선고를 받고 병상에서 누나의 친구로부터 처음 복음을 접한 뒤, 부산에서 미국의 오순절교단인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 소속 켄 타이스(Kenneth Tice) 선교사를 만나 집회통역을 하면서 회심을 하고 폐결핵이 되는 신유의 경험을 하면서 신학교 입학을 결심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전경.
여의도 순복음교회 전경.

1958년 서울 은평구 대조동 최자실 전도사(조 목사의 장모) 집 거실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시작됐다. 당시 전도사였던 조 목사, 최 전도사, 밭일하다 비를 피해 들어온 주부 등 5명이 사과 상자를 보자기로 덮은 강대상을 놓고 예배를 드렸다. 이어 마당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린 것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출발이다.
당시 개신교계의 일반적 분위기와는 달리 창립 초기부터 방언(성령의 힘으로 말한다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말)과 신유(신의 힘으로 병이 낫는 것)를 강조한 조 목사의 ‘뜨거운 목회’는 신자 수 급증으로 이어졌다. 창립 후 3년 만에 서대문로터리에서 부흥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교회를 이전했고, 1973년 여의도로 교회를 옮겼다. 1973년 입당 예배 때 1만명이던 교인은 1979년 10만명, 1984년 40만명을 넘어섰다. 1992년엔 70만명을 넘어 1993년 세계 최대 교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조 목사는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하나님의 성회 총재를 역임하면서 제3세계 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사회 구원을 위해 1999년 비정부기구(NGO)인 사단법인 선한사람들(현 굿피플)을 세워 국내 및 인권 환경 보건 및 아동복지 증진에 앞장섰다. 조 목사는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4차원의 영적세계』 등 다수의 저서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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