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은 베르디 탄생 210주년을 맞아 베르디 3대 작품으로 꼽히는 <일 트로바토레>를 무대에 올린다.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에 이어 베르디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번 작품은 박력 있고 열정적인 작품으로 많은 오페라 애호가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6월22일(목)부터 6월25일(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일 트로바토레>는 ‘음유시인’이라는 뜻으로 작품 속 만리코를 가리킨다. 집시 여인, 아주체나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귀족에게 복수하려다 실수로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만다. 그녀는 제대로 된 복수를 꿈꾸며 귀족의 둘째 아들을 납치한 뒤 만리코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아들처럼 키운다.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만리코는 자신의 친형인 루나 백작과 레오노라라는 여자를 두고 경쟁하게 되면서 복수와 사랑으로 뒤얽히게 되는 작품이다.

국립오페라단은 새롭게 <일 트로바토레>를 해석할 예정이다. 원작 <일 트로바토레>의 15세기 초 스페인 배경을 두 범죄조직에 의해 점령된 현대의 미국으로 옮겨온다. ‘범죄와 내전으로 파괴된 도시’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만리코의 조직을 이민자들의 조직으로, 루나 백작의 조직은 백인 우월주의 집단으로 그려 두 세력 간의 대립을 그려낸다. 인종차별과 폭력 등 오늘날의 사회문제를 작품에 녹여내 동시대성을 보여준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 만리코는 후드에 청바지를 입고 루나 백작은 제복을 연상시키는 가죽자켓을 입어 두 형제의 대비를 극대화시킨다. 무대 디자인 역시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할렘가를 연상시키는 이번 무대는 그래피티 등을 활용하여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그려낼 예정이다.

 

<일 트로바토레>의 매력은 각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는 아리아에서부터 박진감 넘치는 합창에 이르기까지 베르디 음악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레오노라가 만리코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노래하는 ‘고요한 밤이었지(Tacea La Notte Placida)’부터 하이 C로 복수의 비장함과 전율을 느끼게 하는 만리코의 ‘저 타오르는 불꽃을 보라(Di Quella Pira)’ 등 각 캐릭터의 특징을 살린 아리아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대장간의 합창’으로 잘 알려진 ‘보라! 끝없는 밤의 장막을(Vedi! Le Fosche Notturne Spoglie)’은 타악기를 이용해 대장간을 표현하고 집시들의 활기찬 음성으로 베르디 선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런 <일 트로바토레>의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국내외 정상급 성악가들이 뭉쳤다. 루나 백작 역의 바리톤 이동환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베를린 도이체 오퍼 극장 주역 가수로 활동했다. 한국 바리톤으로 베를린 도이치 오퍼 극장의 솔리스트는 이동환이 최초이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등 전 세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바리톤 강주원 역시 루나 백작 역을 맡았다. 삼각관계의 중심이 되는 레오노라 역에는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으로 세계적인 성악가로 발돋음한 후 스위스 바젤 극장 솔리스트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발탁된 소프라노 서선영과 2018년 마린스키 극장에서 <코지 판 투테> 피오르딜리지 역으로 데뷔하여 주목받고 있는 신예 소프라노 에카테리나 산니코바가 열연을 펼친다. 만리코 역에는 오스트리아 빈 폴크스오퍼의 간판스타로 활약한 테너 국윤종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며 2022년 국립오페라단 <라 트라비아타>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관객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 젊은 테너 이범주가 맡아 열연을 펼칠 예정이다. 아주체나 역에는 매력적인 저음의 소유자이자 국내외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메조소프라노 김지선과 양송미가 맡는다.

<일 트로바토레>를 위해 세계 정상급 제작진이 힘을 합친다. 이번 작품의 연출은 2022년 국립오페라단 <아틸라> 연출을 맡아 명화 같은 무대를 선사했던 세계적인 연출가 잔카를로 델 모나코가 맡는다. 그는 20세기 최고의 드라마틱 테너로 알려져 있는 마리오 델 모나코의 아들로 1965년 이탈리아 시라쿠사에서 <삼손과 데릴라> 연출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 후 58년간 연출가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베테랑 연출가와 함께 호흡을 맞출 지휘자는 2017년 솔티 국제 지휘콩쿠르 최우수상에 빛나는 신예 마에스트로 레오나르도 시니가 맡는다. 2019년 부다페스트에서 푸치니 오페라 <요정 빌리>로 데뷔하였으며 이번 작품으로 국내 오페라 무대 신고식을 치룬다. 오페라계 베테랑과 젊은 피가 만들어낼 시너지에 관객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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