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장 김한)가 올해‘더늠’을 주제로 움츠렸던 날개를 활짝 펴고 열흘간의 소리 여정에 나선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온라인 상영과 제한된 관객으로 아쉬움을 남겼던 지난 시간을 뒤로하고 보다 풍성하고 밀도 있는 구성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포르투갈, 스페인 등 해외 5개국과 76회의 묵직한 공연들로 열흘간 전라북도 일대가 음악의 파노라마로 넘실댄다. 
  2022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오는 9월 16일부터 25일까지 축제 일정을 열흘로 늘리고, 주요 공간인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비롯해 부안 채석강, 치명자성지 평화의전당, 덕진공원 연화정도서관 연화루 등으로 장소를 넓혔다. 이 같은 변화는 지난 코로나 시기의 위협을 과감한 실험과 도전으로 극복한 수확을 다채롭게 녹여낸 결과다. 

코로나 2년 성과 토대로 ‘작품 중심 예술축제’ 강화
우선 작품 중심 예술축제로서의 가능성과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큰 틀 아래 몇 가지 변화가 눈에 띈다. 번잡한 실외 장식과 프로그램을 최소화해 작품 집중도를 높이고, 정돈되고 미니멀한 야외 휴식공간을 내실 있게 꾸밀 예정이다. 이는 지난 2년 여 간의 달라진 축제 형태에 대한 높아진 관객 만족도와 호평을 토대로 한 결과다. 
이에 따라 야외 행사와 프로그램 운영에 들인 공을 실내공연으로 집중화, 내실화한다. 축제를 열흘로 늘린 것은 무대운영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인력 운영, 무대 설치 안정성 제고, 예술가들의 충분한 리허설 시간 등을 확보해 공연의 질을 높이는데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더불어 상수의 위협요소인 감염병의 등장과 태풍 등 불안정한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데도 장기적으로 장점이 크다는 게 조직위의 설명이다. 

영상과 디지털 적극 활용 ‧ 지역 명소공연 등 공연 형식 다양화 
코로나 시국에 대안으로 떠올랐던 비대면 영상공연은 향후 방편이 아닌, 주류의 공연 형태로 편입될 것이란 전망 속에 소리축제 역시 서서히 그 비중과 투자를 높여 갈 계획이다. 개막공연‘백년의 서사’를 통해 판소리 100년의 역사를 고음반부터 디지털까지 감상 매개를 통해 통시적으로 고찰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근대와 현대 판소리의 생생한 변화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기회. 또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을 보다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중계하기 위한 노력도 더해진다. 메타버스를 활용한 어린이 그림 공모사업이나 이머시브(실감형, 몰입형) 가족공연을 비중 있게 배치한 것도 이 같은 시각에서 준비된 프로그램이다.
이와 함께 전라북도 특별 명소 공연이 더해져 지역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 유튜브, OTT 플랫폼, 영상공연의 발전 등으로‘세계화’의 구호가‘지역화’의 가치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에서‘지역 브랜딩’에 더 관심을 갖자는 취지에서다. 공연과 지역 명소를 결합해 실내공연 중심의 단조로움을 벗어나는 한편, 공감각적 공연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부안 채석강, 전주 치명자성지 평화의전당, 덕진공원 연화정도서관 연화루 등이 특별 명소로 낙점됐다. 

축제 주제 ‘더늠’…예술가 정신에 대한 본질을 찾기 위한 여정
올해 축제의 주제는‘더늠(20th+1)’으로 정하고 예술가, 예술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다. 더늠은 판소리 용어‘더 넣다’라는 뜻으로, 고도의 기능적 성취와 수련을 넘어‘자기화’의 영역을 개척했다는 의미. 작품 중심 예술축제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예술과 예술가 정신에 대한 본질을 고민해보자는 제안이다.
메인 포스터 이미지는 주제어‘더늠’의 자음과 모음, 전주세계소리축제의 국영문 글자가 한 방향을 향해 모여드는 이미지를 담아냈다. 소리축제를 통해 더늠 정신이 확대되고 집중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올해 라인업은 전통과 현대, 월드뮤직과 복합장르 등을 7개 섹션으로 편성해 각 프로그램의 성격과 지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포커스 온 더늠 (Focus on 더늠)
올해의 주제를 잘 드러낸 섹션‘포커스 온 더늠’에는 개막공연 <백년의 서사>를 비롯해 전주세계소리축제×KBS교향악단 <접점>, <심청 패러독스>, <Bate Fado>, <바르셀로나 플라멩코 발레>, 폐막공연 <In C> 등이 포진한다. 특히 판소리 100년, 근현대 소리꾼들이 시공을 초월해 이질과 동질의 서사를 그려낸 개막공연과 현대 미니멀 음악가 테리 라일리의 작품‘In C’를 30여 명의 연주자들이 함께하는 폐막공연이 눈길을 끈다.
KBS교향악단과는 다양한 전통음악 장르와의 협연을 통해 국악기와 소리의 다채로운 조화를 이뤄낸다. 몇 안 되는 해외 음악팀 중에서도 바트 파두와 바르셀로나 플라멩코 발레는 그 나라 전통음악과 춤, 그리고 새로운 장르와의 결합을 통해 예술가의 도전정신을 유려하게 풀어낸다. 
정상급 소리꾼 방수미, 박애리, 정상희 명창이 함께하는 <심청 패러독스>. 지난해 춘향가를 입체적으로 연기해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세 여류명창이 올해는 심청가를 소재로 판소리의 색다른 해석과 현대적인 무대를 연출해낸다.

오래된 결: 전통 (Being Heritage)
전통의 원형을 오롯이 담은 섹션‘오래된 결: 전통 (Being Heritage)’에는 소리축제의 근간을 이뤄 온 고도의 예술적 가치가 담긴 전통 브랜드 공연들이 자리한다. 대표 프로그램인 <판소리 다섯바탕>은 수궁가(왕기석), 춘향가(장문희), 적벽가(김도현), 흥보가(유태평양)를 통해 대한민국 최고의 소리 기량을 만난다. 이 밖에 <산조의 밤>은 중견 연주자로서 해금 이동훈, 대금 원완철 명인이 출연해 기악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광대의 노래‘풍운(風韻)’>은 올해 설장구에 주목한다. 우도농악 명인 김동언, 최초의 여성 사물놀이 연주자 박은하, 정읍농악 성윤선, 고창농악 구재연 등이 출연해 설장구의 독보적인 멋과 기량을 선보인다.
판소리와 산조, 설장구를 통해 최고의 경지에 오른 실력파 연주자들의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전통예술이 안겨주는 깊은 몰입의 카타르시스에 빠져드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올해 소리축제가 공을 들인 프로그램‘마스터 클래스’도 눈여겨 볼만하다. 덕진공원 연화정도서관에서 <김일구 명창의 광대가 이야기>, <배현영 교수의 고음반 이야기>, 최동현 교수의 <판소리 이야기> 등이 관객들을 만난다. 장르의 이해와 해설을 통해 예술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다.

온고이지신 (Young & Frontier)   
젊은 전통음악가들의 진지하고도 유쾌한 도전, <온고이지신(Young & Frontier)> 섹션에서는 미래의 전통을 만들어가기 위한 다채로운 실험들이 가득하다. 올해 심사를 통해 선정된 4개의 판소리 기반의 창작 작품이 <소리 프론티어 시즌2>를 통해 초연될 예정. 김봉영×김승진 <판소리극‘다시 쓴 엽서’>를 비롯해 소리극단 도채비 <도채비 ssul 적벽대전>, 그레이바이실버 <사계의 사잇곡>, 소리 <로큰롤 심봉사뎐> 등 극과 음악을 통해 판소리의 현대적 어법이 다채롭게 그려진다. 
이외에도 올해 덕진공원 연화정도서관 연화루로 자리를 옮긴 <젊은 판소리다섯바탕>은 은은한 연꽃향을 배경으로 김정훈, 김나영, 김원기, 김주리, 정윤형 씨 등이 출연해 차세대 소리꾼들의 저력을 보여준다. 이밖에‘오늘의 시나위’를 통해 동해안별신굿 이수자 방지원과 거문고 박다울, 해금 조진용, 아쟁 서수진 씨 등이 출연해 전통의 깊이 있는 이해와 독창적 실험으로 새로운 미래의 시나위를 선보인다. 
   
너머의 감각 : 컨템포러리 (World Music Today)   
전통, 오래된 것으로부터의 확장,‘너머의 감각 : 컨템포러리’섹션. 월드뮤직이라는 장르를 통해 익숙한 음악과 리듬, 낯익은 악기로부터의 일탈, 자유분방함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경험들로 가득하다.
슬로바키아의 바이올린과 침발롬, 더블베이스의 편성으로 재즈와 슬로바키아 민속 음악의 절묘한 아우라를 만들어낸‘파코라 트리오’. 변화를 꾀하면서 전통을 고수하는 얼핏 모순 같은 줄타기 속에서 관객들은 낯선 카타르시스와 경이로움을 만난다. 철현금 명인 류경화와의 협연 연주도 기대된다. 
우리 민요의 변신은 놀라운 즐거움과 음악적 영감을 안겨준다. 구음과 민요의 영역을 쉼 없이 깨뜨리며 전통음악의 한계를 실험해 가고 있는 젊은 소리꾼 김보라를 주축으로 한‘덩기두밥 프로젝트’. 전국의 다양한 민요들을 모티브로 국악과 재즈를 융합해 기타, 드럼, 거문고, 트럼펫 등 다양한 악기 편성으로 매혹적인 민요의 재기발랄함을 선사한다. 이밖에 폴란드, 대만 등 실력 있는 월드뮤직 팀들의 발랄한 민속음악 탐험기가 펼쳐진다. 관객들에게는 감각 너머의 새로운 감각, 숨겨진 낯선 감각을 깨우는 음악에의 일탈을 경험할 수 있다.

소리 인터페이스 (Special & Popular)
올해 가장 대중적 애호가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된 화제작들도 관심을 모은다. 소리축제의 공연작품이 다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일반 관객들에게 상대적으로 익숙하면서도 수준 높은 작품들이 배치된다. 클래식과 대중음악, 한국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 등이 폭넓은 관객층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
클래식은 CBS전북방송과 함께 기획한 <마에스트로 정명훈 실내악 콘서트>가 강력한 레퍼토리로 소리축제와의 만남을 준비한다.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정명훈이 오랜만에 한국을 대표하는 솔리스트들과 실내악 무대를 장식한다. 세계적 거장과 함께 하는 연주자들의 면면 역시 클래식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바이올린 김수연, 비올라 김사라, 첼로 송영훈, 더블베이스 성민제가 함께해 감동의 앙상블을 빚어낼 예정.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와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이 어우러진 <Two Guitars>는 전주 치명자성지 평화의전당을 배경으로 두 기타 정상의 독보적인 화음이 그려진다. 평화의전당의 고적함과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섬세하고 매혹적인 연주가 올해 소리축제의 시그니처 공연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독특한 음색과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젊은 음악가 안예은이 <안예은 콘서트_전주 상사화>로 소리축제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핼로우! 패밀리 (kids & Family)
가족과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환상적인 실감형 콘텐츠를 활용한 이머시브 가족 뮤지컬 <알피 ALPI>가 올해 가장 핫한 가족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3D 입체영상과 배우들의 실감나는 퍼포먼스, 시시각각 마음을 졸이는 모험이 아이들에게 짜릿한 시간을 선사한다. 이밖에 패밀리 공연 <우리랑 진도깨비>와 전북어린이대음악제, 소리배움터 등이 가족 단위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글로컬 랩 (Glocal lab)
지역의 힘, 지역 예술가들의 역량을 유감없이 선보이는 섹션. 살롱드국악 선율모리 <듣, 보, 고> 풍류, 세악사 <싱잉볼, 재즈트리오를 만나다>, 연희단 청연의 <힙한 광대들>, 국악AI 해커톤 <기계학습데이터 맵핑_Sori N>, <진안 중평굿보존회> 등이 관객들을 만난다. 국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지역 예술가들의 실험과 도전, 장르와 장르를 넘나드는 이채로운 음악들이 미래의 전통을 가늠하는 기회를 안겨준다. 

박재천 집행위원장은“올해 축제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작품 중심 예술축제로서 디지털과 지역 브랜딩, 그리고 예술의 고도화는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현재의 질문이며, 그 가치와 목표를 아티스트, 관객들과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공연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 만큼 몰두하고 몰입하는 속에서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음악적 경향성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소리축제 프로그램은 작품 중심 예술제를 표방하는 만큼 비중있고 매력 있는 라인업들이 대거 포진했다. 전통에서부터 대중음악까지 융합과 확장의 동심원 속에 76회의 수준 높은 작품들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적 경향과 현상을 담아낸다.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탐색하는 예술가들의 노력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설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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