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1950-3) 당시 가평전투에서
지난 4월 23일, 서울에 있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대사들,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장과 함께 서울에서 북동쪽으로 약 70킬로미터 떨어진 강원도 가평군에서 벌어진 가평전투 70주년 기념행사를 주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황기철 보훈처장관과 싸이언 스미스(Simon Smith) 주한 영국대사, 캐서린 레이퍼(Catherine Raper) 주한 호주대사, 마이클 대나허(Michael Danagher) 주한 캐나다대사, 필립 터너(Philip Turner) 주한 뉴질랜드대사 등이 참석했다.
한국의 국방 국제 관계에 관심이 있는 많은 다른 국내 및 국제 고위 인사들과 김성기 가평군수, 스튜어트 캠벨 메이어 유엔군 부사령관도 함께 했다.
1951년 4월 23 ~ 25일에 일어난 가평 전투는 영연방 제 27 보병 여단 병사들의 용맹으로 유명하다.
영연방 여단이 수도 인 서울에 대한 공산주의 진군을 확인한 영연방 여단은 대한민국, 두 영연방 대대 (패트리샤 공주의 캐나다 경보병 연대 제 2 대대와 호주 왕립 연대 제 3 대대)와 함께 공격을 감행했으며, 중국 사단 전체에 대한 가평 강 계곡 방어로 인해 그해 중국의 봄 공세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점령 할 계획이었다.
호주와 캐나다 대대는 한반도 평화 회복을 위한 군사력 사용을 승인한 UN 안전 보장 이사회 Resoultion 83의 명령에 따라 작전 중이었다.
1951년 4월 중순 중국군은 주요 반격을 위해 유엔군을 취약한 위치로 유인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38선 (북한과 남한 사이의 전쟁 전 국경) 바로 북쪽으로 철수했습니다.
그 공격은 1951년 4월 22일에 발발했다. 한국 제 6사단은 중국의 공세로 산산조각이 나고 다음날 제 27 여단은 가평 강과 계곡 (38선에서 남쪽으로 약 12 마일)을 통해 한국의 철수를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영국 연대는 계곡 서쪽에 캐나다 군이, 동쪽에 호주군이있는 언덕 꼭대기에 배치되었다. 제 27 여단 부대 인 미들 섹스 연대 인 제 1대대는 예비군에 배치되었고, 제 16 야전 연대, 뉴질랜드 왕립 포병, 제 72 미 전차 대대 A 중대가 화력 지원을 제공했다.
전투의 첫 이틀 동안 호주군은 전투의 승기를 차지했다. 호주군은 공격하는 중국군에게 막대한 사상자를 냈지만 오른쪽 측면에 두 번째 전 강력 중국 연대가 도착하면서 호주의 위치를 포위하는 위협이 되었다.
오늘날 가평은 한국인 및 외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에게도 한국 최고의 장소 중 하나로 꼽힌다.
가평은 “한 걸음 한 걸음이 경치가 되는 곳”으로 알려져있다. ‘한국에서 휴식과 요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곳’이라고도 불린다.
깨끗한 물과 높은 산의 아름다운 조화로운 자연 경관으로 가평은 한국과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21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대표적인 산업 '인 한국의 관광 산업을 선도해왔다.
또한 가평은 “한국 최고의 페스티발이자 문화 체육 관광부가 지정한 유일한 음악제인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음악의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음악을 간직한 '문화 예술의 도시'로도 알려진 가평은 인구 6만 3천명이지만 전체 면적은 서울의 1.4배에 달하는 '개발과 성장을 위한 무한한 잠재력이 있는 지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