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 왜구 방어의 최전선…성벽 93% 남아 조선 초기 축성 기술 집약된 사례
충남 서천의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옛 성곽이 다시 국가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조선 초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서천읍성이 국가사적으로 지정되며, 한반도 해안 방어의 전초기지를 상징하는 군사 유산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11일 “서천읍성을 사적으로 지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읍성은 지방 행정 및 군사 중심지로, 성벽을 두르고 문을 설치해 외부와 연결·통제하던 도시 방어체계를 말한다.
서천읍성은 세종대(1418∼1450) 금강 하구를 통해 내륙으로 진입하던 왜구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축조된 연해(沿海) 방어성으로 알려져 있다. 바다를 낀 평지에 축성되는 경우가 많던 연해 읍성과 달리, 이곳은 전략적 요충성을 살려 산지 위에 축성된 점이 특징이다.
일제강점기 전국적으로 읍성이 철거된 ‘조선읍성 훼철령’의 영향 속에서도 서천읍성은 전체 둘레 1,645m 중 1,535.5m, 약 93%가량의 성벽이 잔존해 있다. 이는 국내 읍성 중 유례없이 높은 보존율이다.
또한 서천읍성에는 조선 초기 성곽 정책과 축성 기술의 변화가 한눈에 보인다.
1438년 반포된 축성 기준서 ‘축성신도’에 따른 계단식 내벽 구조, 1443년 이보흠이 제안한 한양도성식 수직 내벽 축조 기법이 동시에 확인된다.
성벽에 적을 향해 돌출되게 쌓아 공격·관측 기능을 가진 치성(雉城)도 눈에 띈다. 현재까지 총 16개가 확인됐으며, 약 90m 간격으로 촘촘히 배치되어 있다. 이는 기록에서 제시된 표준 간격(150보, 약 155m)보다 훨씬 촘촘한 형태로, 서천읍성이 실전 방어에서 얼마나 높은 대응력을 의도했는지 보여준다.
아울러 해자(垓字)와 도랑형 방어구조 등 외곽 방어 유구 또한 확인되면서, 당시 성곽방어체계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서천읍성은 조선 초기 연해 방어 전략과 성곽 축성 방식의 변천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구가 잘 남아 있다”며 “향후 역사교육과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서천군은 향후 보존 및 복원 계획, 탐방 프로그램 개발, 주변 역사문화 경관과의 연계 사업 등을 모색할 방침이다.
